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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의 강제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기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일제로부터 식민지화되면서 자유는 박탈되고 무단통치의 탄압은 더울 심해졌다. 그러나 민족적 의지가 강인했던 우리 국민은 이에 굽히지 않고 국권회복 운동을 끊임없이 펼쳐 오던 중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 당시 양촌면 누산리 출신인 박충서는 학생 신분으로 서울 파고다 공원의 3.1만세운동 시위에 참가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다 귀향한 후 3월 19일 인근의 박승각, 박승만, 안성환, 전태순, 오인환, 정억만 등과 함께 오라니 장날을 기하여 3.1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로 결의하고 비분강개한 격문과 경고문 등을 작성 각자 나누어 갖고 양촌면 각지에 배포하면서 만세운동에 동참하여 봉기할 것을 권유해 오다가 오라니 장날인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에 300여 군중이 운집하자 선두에서 품속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높이 선창하니 군중들도 이에 적극 호응하여 열렬한 만세를 외치던 중 애국지사 7명이 모두 왜경에 체포되었다. 한편 대곶면 초원지리 출신인 정인섭은 당시 서당 선생이었으나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전해들은 후 동리의 임철모와 함께 오라니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할것을 결의하고 그 자리에서 무명천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먹으로 대한독립 만세라고 쓴 깃발을 준비한 후 오라니 장날인 3월 23일 오후 4시경 300여 군중들의 선두에서 정인섭은 대나무 장대를 휘두르고 임철모는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절규하면서 군중들은 경찰관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인솔하려다 통탄스럽게 2명의 애국지사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토록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몸 바치신 숭고한 애국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이어받고 그 높은 뜻을 자손만대에게 영원히 기리고자 유서 깊은 이곳에 3.1독립만세운동 유적기념비를 세운다. 2001년 8월 15일 글 : 오라니장터 3.1만세운동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