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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당시28세) 용인 가톨릭묘지에 안장 1960년 서울 출생 1976년 9월 서울 장충중학교 졸업. 잉글랜드사, 에펠사, 시엔나사 입사 1988년 2월 26일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19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 철야농성 19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 중 분신 1988년 4월 3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1시경 운명 |27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고려피혁 성남공장은 200여 노동자가 슈발리에 구두를 생산하는 대우계열 중 소기업으로‘고려’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더 이상 자본가의 노예일 수 없다고 생각한 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조가 건설됐 다. 그러나 본조의 공작에 의해 성남공장은 지부가 되었고, 지부장 선거과정에서 회사와 어용노조 측에 의해 민주노조측이 패배하자 회사는 민주노조에 대해 탄 압을 시작했다. 부서이동과 해고, 조치가 행해졌고 이에 반대하며 농성에 들어가자 회사와 어 용노조측은 민주노조 측을 회사 밖으로 밀어냈고 민주노조측은 회사 밖에서 천 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3일째 노동부가 중재를 한답시고 회사 측과 협 상에 들어갔으나 회사 측은 그사이 물품을 빼돌리려 했고,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 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지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산화하였다. ‘ …최윤범동지는민주노조를건설하기위해처음태동부터많은애를써오셨다. 그러나같 은 동료인 2명이 배신을 하여 민주노조 만드는 일을 패배로 돌리고 말았다. 최윤범 동지는 모 든힘든일을자기가맡아서하려하고모든일을책임감있게해왔다. 언제나 우리에게 이르길“웃음을 잃지 말고 항상 재미있게 생각을 하라”고 하셨다. 최윤범 동지는“조합원들과싸울필요도없고, 관리자와싸워야하고어용노조위원장과싸워야한다” 고 하셨다. “단결된 힘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라고 하셨다. 분향소에 들어가 아저씨의 사진을 보고있자면지금도우리의옆에살아서우리에게장난을걸고웃으시며우리들을재미있게해 주시는것같다.…최윤범동지의모든행동하나하나가지금도눈에선하다.’ - 한줌불꽃으로산화해간동지의죽음에대해한조합원의회고- 끝내살리라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