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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273 French Republic 프랑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서 소련의 유럽 지배에 경계심을 갖고 있었던 프랑스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6・25전쟁에 지상군과 해군을 파견하였다. 1950년 7월 28일 프랑스는 극동함대 소속 구축함 1척을 우리나라 해역에 보내 미 극동해군사령부의 작전 통제하에서 해상 작전을 수행했다. 지상군은 6・25전쟁을 위해 ‘프랑스대대’가 새로이 편성되어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약 2주간의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친 후, 12월 11일 미 제2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하였다. 프랑스군은 일찍이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식민지에서 실전을 경험한 최정예 군대로 고용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전설적인 외인부대의 원조이기도 하다. 프랑스대대는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지만 탁월한 전술과 용맹성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들은 백병전으로 원주 탈환에 전과를 올렸고, 지평리전투, 단장의능선, 피의능선 등의 격전에서 용맹을 떨쳐 많은 훈장과 개인 표창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는 전쟁 중 전사 262명, 부상 1,008명, 실종 19명 등 총 1,289여 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참전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