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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또한 大韓協會에 參劃하여 國民의 啓蒙運動과 朝鮮物産奬勵運動에도 獻身하였으며 特히 李相龍과 義兵將 車檍杓 등으로 하여금 太白山麓에서 日本軍을 擊滅토록 하는 한편 地方有志들과 寧海協昌學校를 設立運營하였으며 無政府主義者 洪鎭裕 金太洛 鄭太成 등과 더불어 自由聯合을 組織하여 社會改革運動에 獻身하였고 人道公議所라는 秘密團體를 組織하여 抗日運動을 强力히 推進하였다. 3.1運動때는 寧海萬世運動의 倡首로서 漢江以南에서는 最大規模의 示威運動을 主導하다가 七年 刑을 선고받았으며 또한 軍資金調達關係로 3.1運動 二年前 六月刑을 받았다. 出獄後 李運衡과 緊密히 提携하였고 義烈團 金元鳳과 靈權犀通하여 民族解放運動에 參劃하셨다. 光復을 맞이하자 크게 기뻐하며 解放慶祝式에서 民族의 大同團結을 力說하였으나 나라는 外勢依存勢力으로因하여 날로 混亂에 빠져 同族相爭만 일삼기에 鬱憤과 慨歎으로 나날을 보내던 중 檀紀4296년 8월 26일 86세로 遺恨을 남기신채 逝去하여 이곳 槐市洞後山 一字峯 甲子에 3.1同志會葬으로 安葬하였다. 民族의 指導者요 萬代의 師表이신 先生의 빛나는 節義의 자취를 기리며 民族의 龜鑑으로 삼고자 여기에 墓碑를 세운다. 配位는 眞城李氏이며 退溪先生의 11대손 中錫의 長女로 天性이 賢淑하여 先生의 獨立運動에 많은 內助를 아끼지 않았다. 子女로는 重基 重章 二男과 朴鍾悳 權相璉에게 출가한 二女가 있고 重基...중략...銘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