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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기 (1943년 ~ 1945년): 학병 징집 선동조선 청년 전장 동원: 일제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1943년부터 '학생강제동원령(학병제)'을 실시했습니다. 이때 김석원은 군인 계통의 대표 연사로 나섰습니다.강연 및 언론 선동: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등을 통해 "조선 청년들이여,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전장으로 나아가라"며 수많은 조선 엘리트 학생들을 총받이로 내모는 유세와 강연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자녀들의 동원: 자신의 친일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차남 김영수 등 아들들을 모두 일본군에 입대시켰으며, 차남은 필리핀 전선에서 전사했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사후 조치김석원 장군은 광복 후 자신의 회고록 《노병의 한(恨)》을 통해 "이유야 어쨌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오랫동안 일본 군인 노릇을 한 것은 내 생애 가장 큰 불명예"라며 친일 행적을 공개적으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지휘관으로서 국가를 구한 공로(구국공훈)도 명확합니다.하지만 전쟁 최전선에서 일본군 복무를 지속한 점과 학병 징집에 적극 앞장선 과오가 워낙 무거워,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수록되었으며 성남고등학교에 생전에 간립되어 있던 그의 동상도 2003년 철거되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