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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몽한 역사의 어둠속에서 밝아 올 새벽을 예감하고 기원했던 시인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1930년대 이육사(1904~1944) - 윤동주(1917~1945)를 비롯해 이희승, 조지훈, 박두진, 김영랑 등 친일 활동을 거부하고 암흑기를 맞은 문인들은 모두 문학 활동을 거부하거나, 민족의 양심을 지키고자 저항했다. 이육사는 대표작인 〈청포도〉를 낸 다음 조선을 탈출하여 북경으로 향했으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육사는 17회에 걸쳐 투옥과 출옥을 거듭하다가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에 41세를 일기로 옥사했다. ◁ 저항시인 이육사와 윤동주(오른쪽)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해방을 눈앞에 둔 194년 1월과 1945년 2월에 옥사했다. ■ 만해 한용운(1879~1944) - 만해 한용운은 1916년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을 발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1931년 '조선 불교 청년회'를 '조선 불교 청년 동맹'으로 이름 바꾸었으며,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강화하였다. 이해 월간지를 인수하였고,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1937년 불교 항일 단체인 '만당'을 결성하여 항일 운동을 하던 중 만당 사건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1879 충청남도 홍성 출생 / 1896 동학에 가담하였으나 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감 / 1919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 1927 신간지 중앙 집행위원 / 1930 월간지 〈불교〉 발행인 / 1944 사망 ◁ '신식학교'의 풍경 - 우리 민족지도자들이 세운 사립학교는 민족교육운동에 앞장서서 항일저항 의식을 고취하였다. △ 납북시인들 - 왼쪽위으로부터 정지용, 이광수, 김기림, 김억, 김동환 ◁ 6.25 피난민 - 1950년대의 시는 전장시로부터 출발한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구상, 박인환, 유치환, 박두진, 조지훈 등 많은 문인들은 이에 대응하여 격시를 쓰고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였으며, 1.4후퇴를 전후한 시기에 특히 체계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사이에 이광수, 김동환, 김억, 정지용, 김기림 등은 납북되며 50년대의 문학은 분단 시대의 문학이라는 멍에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쟁은 시인들에게 참전과 종군이라는 적극적 대응 방식에서부터 풍자와 역설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감상주의나 폐쇄적 자아의식으로의 굴절 등 다양한 문학적 성향을 표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