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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광주학생독립운동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학산되었던 학생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대표적인 민족운동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 규모나 영향, 역사적 의의에서 3.1운동과 나란히하는 항일독립운동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단순히 광주 지역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충돌하여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3.1운동을 계기로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이 된 학생.농민.노동자 등 민중세력들은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정책과 폭압 속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맹휴투쟁, 소작쟁의, 파업을 감행하면서 항일의식과 조직력을 키워나갔다. 이와 같은 민중의 항일운동 역량이 성숙되어 학생독립운동이 촉발되었던 것이다.
11월 3일의 학생독립운동은 당시 사회의 선진적 지식인으로서 우세한 조직력과 패기로 민족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한 학생들이 핵심 역할을 했으며, 신간회, 조선총연맹, 조선학생전위동맹 등 사회, 청년단체들이 가세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국적인 항일민족운동으로 발전한 학생독립운동은 5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320개 학교 5만 4천여명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해외에도 파급되어 만주의 간도와 길림성, 중국의 상해와 북경, 그리고 일본과 미주지역에서도 격려 집회와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후에도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이 계승되어 각종 비밀결사운동, 1940년 강압적 징병과 공출에 대한 저항운동, 1943년 5월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항일운동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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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녔음에도 11월 3일의 학생독립운동은 아직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부부의 국민과 학생들은 이 운동이 한일 학생들 사이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광주라는 지역에 한정된 사건으로밖에 알지 못하여, 11월 3일을 '학생의 날' 기념일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라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체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조말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식되고 역사적으로도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