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抗日愛國志士 湖山 金溶益 先生 功績碑(항일애국지사 호산 김용익 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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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경 경남 산청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용익은 진주 3·1운동 때 홍종석 등과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기 직전 도주하여 산속에서 은신하였다. 이때 권총을 입수하였고,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의하고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에 나섰다. 동년 9월 20일 오후 5시경 동군 단성면 소남리 조현용의 집에 들어가 그에게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이라 칭하고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또 동월 23일 오후 5시경 동군 도산면 장죽리 이원규의 집에 가서 같은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동월 28일 오후 6시경 동군 생비량면 가종리에 나타나 마침 위생검사 나온 동면 주재소 순사 정안찬을 응징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김용익은 일경에 체포되어 1932년 3월 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았으나, 곧 징역 4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