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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중원(中原) 사람이다. 일본 중앙대학에 재학중인 1920년에 동경조선고학생동우회의 총무로 활동하면서 동회를 재일고학생의 통합적 조직체로 발전시키는데 주동적 역할을 담당했다. 동년 4월에 영친왕 이은(李垠)과 일본의 이본궁녀(梨本宮女)와의 성혼이 있게되자 이들 회원들은 이를 조국독립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혼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결혼식을 저지하는 한편 식장에 참석하기로 된 조선총독을 비롯하여 일인고관을 처단하고 또 일제기관을 폭파하여 한국독립의 기세를 올리고자 했다. 따라서 이들은 거사에 앞서 폭탄을 제조하여 2차례에 걸쳐 폭탄의 성능을 시험해보면서 준비를 추진하였으나 사전에 이러한 계획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한편 동년 9월, 미의원단 일행이 동경에 체류할 때, 그는 동지 4명과 함께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미의원단 일행이 숙소인 제국호텔로 향하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전개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후 그는 동우회란 이름으로 30여명 규모의 순회연극단을 조직하고 1921년 6월에 귀국하여 전국각지를 돌면서 연극을 통한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