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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기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6월 25일 저녁, 116고지 후방 삼거리 일대에 위치한 적포병이 계속 사격을 가해 오자 7연대장은 연대수색대장에게 적포병 진지를 습격하라고 명령하였다. 23:00시경 우두산을 출발한 연대수색대 30명은 은밀히 침투하여 적포병 진지에 접근,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고 사격을 퍼부은 후 무사히 빠져나와 천구리(샘두락)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동하여 할미여울을 건너 올 때 적으로 오인한 7연대 2대대가 사격을 가해 대부분이 전사 하였다. 2대대는 5중대 1개소대가 야간 기습 후 철수한 동료였기에 추격해 오는 적으로 알고 사격했던 것이며, 연대수색대가 철수로를 사전 협조하지 않아서 발생한 참변이었다. 이 참변을 교훈 삼아 6월 26일 초저녁 우두산에 배치되었다가 상황이 급박하여 할미여울을 건너 철수하는 19연대 2대대 5중대를 성공적으로 엄호해주었다. 6월 27일 11:30분경, 적이 격렬한 사격을 퍼부은 후 소양강 북단 보리밭에 숨어있던 적 보병이 일제히 강을 건너 공격해 오는것을 박격포 사격을 집중해 일단 저지했으나 오후에는 적의 압력에 밀려 원창고개로 철수함으로서 136고지 전투는 종료되었다. 조국이 운명을 건 갈림길에서 끝까지 136고지를 지켰던 국군장병들, 그들을 기억하기 힘들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우뚝 서 있는 136고지와 말없이 흘러가는 할미여울은 그들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가올지 모르는 희생에 대비하기 위한 마음가짐까지 가다듬으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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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고지 전적지 136고지는 소양강의 원천나루와 할미여울, 천전리를 감제 관측 할 수 있는 중요고지로서 6.25 전쟁 초기 7연대 2대대 관측소가 위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당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도 했고, 참변의 아픔을 겪기도 했던 장소이다. 6.25 전쟁 발발 당시 7연대 2대대는 38선을 연하는 양통리(배후령)로부터 양구 남방 추양리까지의 넓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은 2대대가 배치된 감제고지를 소수병력으로 고착하고 배치고개, 간척고개, 장재동 일대에 주력을 투입하여 아군 방어진지를 돌파하였다. 이에 아군 방어지대는 4개로 토막났고, 퇴로차단 위협을 받은 2대대는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철수를 강요당했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대 2대대장은 대대예비인 6중대 일부와 본부중대를 우선 소양강 남단의 주진지를 점령하도록 하고, 08:30분경부터 샘밭에 위치하여 46번도로(소양댐 건설로 수몰)를 따라 철수해 오는 병력을 수습하여 12:00시까지 대대병력의 절반 정도를 지내리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중대별로 계획된 방어진지를 점령시키고 대대 관측소를 136고지에 설치하였다. 이 때 원진나루 부근 도로에 밀집하여 이동해 오는 적 1중대가 관측되었다. 즉각 전투준비를 갖춘 2대대는 적이 사격거리내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제히 기습사격을 실시하였다. 교전은 불과 5~6분만에 끝났고, 적은 큰 피해를 입고 도주하였다. 초전의 실패를 만회한 통쾌한 복수전이었다. 6월 25일 야간, 2대대대장은 천전리에 집결한 적을 기습하기 위해 5중대 1개소대를 침투시켰다. 할미여울을 건너 적진으로 침투한 1개소대는 기습사격을 퍼부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힌 후 전원 무사히 복귀하였다. 또 한번의 통쾌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