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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흥 애국지사는 1944년 3월 초순 임시정부 계통의 공작원으로부터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중국으로부터 귀국하여 영천지방의 유지인 정도영과 협의, 후방교란과 일제의 무력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대구의 동촌 비행장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이 노출되어 1944년 3월 27일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일본 헌병대로 이송되어 8개월에 걸쳐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자백을 거부하여 동지들의 희생을 막고 결국 일경의 고문으로 빈사상태가 되어 병보석되었으나 출옥한 후 7일만인 1944년 12월 15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