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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월남하여 과거 일본군 출신을 규합해 1946년 10월 육해공군동지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성남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가르쳐 논란이 되었다. 1948년 12월 육군사관학교를 특임 8기로 졸업하고 대령으로 임관하여 제1사단장이 되었다. 1949년 3월 육군 준장이 되었다. 1949년 10월 관할구역인 1사단 한국군이 북한산 북어를 밀무역해 이익을 챙긴 ‘북어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두고 국방부 총참모장인 채병덕(蔡秉德)과 대립하다 예편하고 성남중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6월 26일 국방부장관 주재로 열린 ‘군사유경험자회담’에 참가했다. 7월 수도사단장으로 복귀해서 진천지구 전투를 비롯하여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지역에서 방어작전을 지휘했다. 8월 제3사단장으로 전보되어 포항전투에 참가했으나 미군사고문단과 의견 대립으로 9월 전시특명검열관이라는 한직으로 발령났다. 현역으로 1952년 성남중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무보직으로 5년을 지내다가 1956년 6월 예편 명령을 받으며 비로소 육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1958년 5월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영등포 을)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60년 7월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재차 무소속(영등포 을)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5 · 16 쿠데타로 민의원직을 상실한 후 원석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