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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석(당시39세) 팔당 공원묘지에 안장 1948년 7월 11일 충남 서산군 안면면 출생 19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입학 1975년 5월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로 구속 1983년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 시작 1984년 3월 14일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 실행위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1985년 시집「밧줄을 타며」, 사회문화론집「물길처럼 바람처럼」발간 1987년 7월 12일 폭주하는 택시에 의해 운명 |26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 동지가‘박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을 낭독하고 할복자살하는 등 유신반대운동이 고조되자, 박정희 정권은‘긴급조치 9호’를 발 동하여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5월에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가 힘차게 벌어졌 고 , 당시 사범대 시위책임을 맡았던 동지는 체포, 구속되었다. 수감 당시 나중에 아내가 되는 강정숙씨에게 쓴 편지는 후에 옥중서한문집‘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에 수록되었다. ’80년 서울의 봄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 포되어 40여 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이때의 고문체험을‘애국가’‘검은 장 갑’등의 시에 쓰고 있다. ’83년부터 동지는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84년 3월 14일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과 동시에 실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화예술분과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박노해 시인을 발굴하 여 민중문학의 한 맥을 이루게 하기도 하였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을 계 기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문학운동을 비롯한 문화운동 전반에 걸쳐 맹렬한 활동 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신협에서 의원 면직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 건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타계할 때까지 문화운동 전반에 걸쳐 맹렬한 운동을 전개하는데 운명일 인 ’87년 7월 12일‘민주시민대동제’가 끝난 후‘민운연’노래패 사무실에서 가 진 술자리 후 귀가 길에 택시교통 사고로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