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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어머님 반남박씨의 장남으로 상남 토월리에 태여나시어 유시로부터 학문과 덕행으로 인근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니 깊이 연유한 바있다하리로다. 14세에 진사 김달근의 따님 김해김씨와 작배하여 화락한 가정을 이루었으나 1919년 3.1운동에 24세의 젊음으로 횽약투신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성 파호문외에서 동지 황상규 김원봉 곽재기 유치형 신철휴 이종암 이성우 윤소룡 서상락 김윤희 이락준 강세우등과 혈맹으로 의열단을 조직하고 폭탄과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여 일본요인의 암살과 주요건물의 파괴를 꾀하니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한 이른바 밀양폭탄사건이다. 왜경에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는 동안 숭고한 그 지조 추호도 변함이 없었고 출혹하자 곧 맹우들과 지하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해외투사 이종암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한일로 다시 1년간의 옥고를 겪으면서 불치의 병을 얻었으니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할일이로다. 와병중에도 국권회복의 일념 골수에 사무쳤는데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동지를 모아 암암리에 조국재건을 준비하다가 또 다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니 쇠약한 병구에 어찌 옥고를 견딜수잇었으랴. 잔인한 왜경도 포항도립병원으로 이감하였으나 한달이 채 못되어 1944년 1월 23일 한많은 일생을 마쳤으니 민족해방을 눈앞에 두고 어찌 차마 영원히 눈을 감으셨을까? 위훈에 보답하는 건국공포장이 정부서 추서되고 영윤 만갑이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광복회 부산지회장으로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을 보살피고 있음은 거룩한 영령을 위로하는 보은이요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