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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전선으로 출전했다. 베이징 부근 난위안[南苑] 전투에서 1개 대대 병력으로 중국군 1개 사단과 싸워 남원행궁을 점령해 중일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1938년 2월에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도위안[東苑]고지 전투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그 밖에도 산시성 허진[河津], 지산[稷山] 등지에서 일본 침략전쟁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1939년 3월 귀국하여 전쟁영웅 대접을 받았다. 4월 5일 부민관에서 열린 개선간담회를 시작으로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군청소재지를 돌아다니며 침략전쟁을 선전하고 조선인의 입대를 권유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선동했다. 그해 8월 육군 중좌로 진급했으며, 10월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0년 1월 일본 히로시마현 도쿠야마[德山]에 있는 보병 제42연대로 전속되었다. 그해 12월 중국 산둥성에 있는 독립혼성 제6여단으로 배치되었다가 이후 지난[濟南]군사령부의 간부교육대장이 되어 위관급 장교를 교육했다. 1944년 8월 육군 대좌(大佐)로 승진하여 조선군사령부 평양병사부 제1과장으로 배속되었는데, 근무하면서 전쟁을 선전 · 선동하는 강연을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