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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編 서원 제단 · 기념관 • 133 던 명나라 유민 문가상(文可尙)(송나라 문천상(文天상)의 후에)과 양천 허격(許格 號 ‘폐海) τ을 민-니- 묘향산(妙香山)등 산수 간에 머물러 시주(참땐)로 비분강개한 미-음을 달래며 친 교를 맺고 살아오다가 연로(年老)하여짐에 조정에서 서울(한양)로 불러올려 어의동 황조인 초(於義洞 皇朝人村)에서 다른 9 의사와 같이 살도록 하고 또 문씨와 같이 창어청(띔댐땀) 한어훈장(漢語뢰11長)을 시켜 조선청년들에게 한어(중국어)를 가르치게 히-였다 四. 대보단 관련 참고자료 1. 대보단 조종암 창설 및 제향의 의의 - 춘추(春秋)대의(大義)의 상징 왕도정치를 존중하고 패도통치를 멸시하는 것은 춘추의 대의요 예의를 지키고 수치 아는 것은 인간의 본의이다 패주가 성왕을 침범하고 금수가 인류를 능멸함은 천도를 거여 하고 인심을 어기는 것으로서 하늘 땅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태고로부터 도의를 숭상하는 군자의 니라요, 충효를 가르치는 예의의 고장으 로 국조 단군 왕검의 홍익인간 이념을 확립하여 이땅에 3척동자도 천하의 의주(義主)를 기 리지 아니힘-이 없었고 비록 필부필부( 1잭夫iZÇ웹)라도 한 때의 은혜를 잊어버림이 없었다. 이찍이 요순의 문덕과 탕무(況武)의 신무(神武)를 노래하고 기자(箕子)를 숭모하면서 주 공(돼公)의 예익-(禮樂)과 공맹(孔굶)의 인의(仁義) 및 정주(程朱)의 성경(誠敬)으로 인격으 도야하여 선덕이 넘치고 공리(公理)로 짜여진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였다 불행하게도 근고에 한당(평패)의 패주들이 폭악한 진(奏)나라의 공벌을 일삼는 폐습을 본받아 도덕을 저버리고 무력을 앞세움에는 엄척(嚴투)절교(細交)하여 끝까지 물리쳐 버렸 으며 다행하게도 천하에 영웅이 나와 송(宋)니-리와 명 (1꺼)나라가 도의(道義)를 집고 일어남 에는 앞다투어 달려가서 세상이 밝아짐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어찌 생각이나 하였으리요 천도(天道)가 뒤바뀌어 세운이 쇠미(훌微)하니 저 서호(西胡) 원(元)과 남만(南蠻) 왜(俊) 와 북로(北慮) 청(淸)이 그 사이에 준동(藍動)하여 마침내 신방(폐냉13)을 더럽 혔으니 어찌 그때의 역사를 차마 읽을 수 있겠는가! 서호(四胡) 원(元)이 무도(無道)하게 침입할 때 고려는 분연히 일어나 40년의 항쟁을 계 속하는 장렬함을 보였고 마침내 중원 남쪽에서 명 (1꺼)나라가 일어님-에 고려조야는 단연히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을 실시하여 100년, 굴욕을 깨끗이 씻어버렸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명 (1꺼)니라와 더욱 화목하여 우의가 각별하던 중 저 도이왜적 (鳥 핏얹減)이 흉계(μ|計)를 품고 임진년에 무례하게 기어 올라옴에 이순신 장군의 수병이 용 맹하게 물리치고 권율 징-군과 조헌 선생을 비롯한 의병이 사방에서 힘치-게 일어나 싸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