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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志士 嚴柱東 先生 追慕碑(애국지사 엄주동 선생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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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동 선생은, 경북 영일(迎日, 현. 포항) 사람이다. 경성고보 교원양성소 재학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15년 3월 서울에서 이우용(李雨用)·최규익(崔奎翼) 등과 함께 일본인들에게 피탈당하고 있는 각종 산업을 한국인 자신이 부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하고 이진석(李鎭石) 등과 함께 서기로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한국혼을 심어주는 정신적 교육으로 국권회복을 기약하고, 일제의 경제적인 침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사업을 계획하던 중 1917년 3월 5일 소위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다. 한편 이 일이 있기 전에 그는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1916년 도사교(都司敎) 나 철(羅喆)이 구월산(九月山)으로 봉심(奉審)의 길을 떠나 순국할 때 김두봉(金枓奉)·나주영(羅柱永) 등 5인과 함께 수행하였다. 교주 나 철(羅喆)이 순국한 후에는 만주로 망명, 서 일(徐一) 휘하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하고, 1920년 청산리(靑山里) 독립전쟁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1921년 8월에는 상해(上海)로 가 신규식(申圭植)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예관( 觀)이 순국한 후에는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2년에는 간도 용정(龍井)에서 군자금 조달을 위한 미곡상을 경영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