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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➋ •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전사자들에게 바치는 헌시 13 정주군에서 ‘유격백마부대’를 조직했다. 군번도 계 급도 없이 싸우며 많은 전과를 올리던 그들 가운데 552명이 전사했다. 생존자들은 그들의 고귀한 넋을 기르기 위해 월남한 이후에도 몇 차례 추도식을 올 렸으나, 충혼탑을 세우지는 못했다. 마침내 노태우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1992년 7월 15일에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유격백마부대충 혼탑’ 이라는 휘호를 한자로 직접 썼다. 테르모필레의 스파르타군 묘비명을 연상시키는 유격백마충혼탑 묘비명 이 탑에는 전사자들의 성명이 새겨져 있고, 탑 앞 의 안내판에는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 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 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라는 헌시가 쓰여있다. 읽다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진다. 이 헌시는 기원전 480년 8~9월에 당시 거대한 제 국이던 페르시아군(軍)과 그리고 스파르타가 이끌던 그리스의 자유로운 도시국가들의 동맹군 사이에 그 리스의 테르모필레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패배해 전사한 스파르타군 매장지 꼭대기의 기념비에 새겨 진 묘비명을 떠올리게 한다. “오! 나그네여! 스파르타에게 말해다오! 우리가 여 기에 누웠다고, 약속을 지켰다고!”라는 유명한 헌시 가 그것이다. 데르모필레 전투에서 패배해 전사했다 고 해도, 그들의 죽음은 역사에서 칭송과 존경의 대 상이 되고 있다. 자유민으로 살아왔던 그리스 병사 들이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압도적 대군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와 자유를 위해 싸운 자유인의 전형적 항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유격백마부대대원들 역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소수였으나, 인해전술로 밀고내려오는 압도적 대군 에 굴복하지 않고 항전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순국은 후대에 큰 도덕적 교훈이 되고 있다. 김정일의 만행에 희생된 대한민국 희생자들 이 충혼탑에서 몇 걸음 옮기면 곧 ‘대한항공기 버 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을 만나게 된다. 얼핏 1983년 9월 1일에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공군전투 기에 격추된 대한항공기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 다. 그렇지만 아니다. 1987년 11월 28일 밤 이라크 의 수도 바그다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기는 11월 서울시 서초구 ‘매헌 시민의 숲’ 공원에 있는 ‘유격백마충혼탑’(홍 찬선 제공) 유격백마충혼탑 원경(능금아씨 제공) 유격백마부대원들의 마지막 사진 (1953,10.25, 정의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