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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 65년만의 한 · 쿠바 외교관계 수립, 양국간 호혜적 공동미래 열어나가야 13 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였다. 쿠바는 혁명이후 외국자본을 국유화하면서 미국과 갈등하게 되 었고, 그 과정에서 소련에 접근하였다. 카스트 로의 쿠바는 냉전시대 미 · 소의 대리전 역할을 했다. 널리 알려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시대 미 · 소의 최대 갈등사건으로, 핵전쟁 일보 직전 상황까지 갔다는 국제정치 전문가들 의 평가가있다. 카스트로는 1986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과 친선협조 조약을 맺고 형제 관계를 굳건히 하였다. 김일성이 AK소총 10만정과 1천6백만 달러의 탄약 등 군사지원을 해준 것에 대해 카 스트로는 자신의 후임자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카스트로의 유 훈이 그동안 한국과 쿠바간 외교관계 수립의 최대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1999년 우리나라가 유엔총회에서 대 (對) 쿠바 금수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하 여 쿠바와의 냉각관계가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 이후 쿠바는 한국의 우호적인 입장에 대 해 비공식 교류의 폭을 점진적으로 늘려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재임동안 윤병세 전 외교 장관이 쿠바와의 외교관계 수립에 적극적인 노 력을 기울였다. 윤 전 장관은 2016년 아바나를 방문하여 부르노 로드리게스 현 외교장관과 최 초의 양국 외교장관간 공식회담을 갖고 양국간 의 관계정상화 합의수준까지 갔다. 그러나 북 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쿠바 국가평의회 내 반 대 의견으로 수교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 다. 2016년 11월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시 윤 전 장관은 조전을 보냈다. 이러한 우리 외교의 축적된 활동과 최근의 ‘한류’에 대한 쿠바 국민 들의 열정이 이번 한 · 쿠바 수교의 든든한 토대 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쿠바와의 관계개선에서 넘어야 할 미국과 북한 변수 이번에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하 여 지나친 기대를 걸기 보다는 신중한 외교적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쿠바와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다음으로 쿠바가 북한의 ‘형 쿠바의 위치와 모양  지난해 7월 촬영된 쿠바 수도 아바나 전경(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