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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투사비문. 8.15해방 이후 부남의 청년들은 치안유지와 자유민주주의 건설을 위해 청년단을 조직하고 건국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새 조국 건설에 앞서 반공 반탁운동과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좌,우익의 극한 대립은 민족의 비극을 잉태하였다. 그러던 1949년 10월15일 밤 남로당원 20여명에 의해 대치마을이 기습을 당하고 청년 10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해방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된 집단학살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청년 14명이 인민군에 체포당한 후 고문에 시달리다가 학살당했고 또한 24명이 체포당했는데 그 중 17명은 전주시 노송동에 위치한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 당시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인원은 5천여명으로 추산되는데 디들은 50여일 동안 고문과 굶주림 속에서 죽음의 고통에 시달렸다. 또한 인민군은 8월 14일(음력) 황혼무련 방공호를 판다는 구실을 들어 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