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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51년 1월 국본 특(육) 제22호로 편성된 육군본부 직할 결사 유격 제11연대와 제12, 13연대 장병 640명을 1951년 2월 20일 육군 중령 채명신이 통합, 백골병단을 창설하고 퇴곡리에서 오대산 북방 중부내륙 청도리 방면으로 진출, 적의 배후를 유린하였다. 1951년 2월 28일 적 69여단 소속 정치군관으로부터 노획한 전투상보작전 배치상황 등을 아군 수도사단에 속보하여 적을 괴멸시켰고 광원리 소재 적 3군단 지휘부의 습격, 적 후방에서 내왕하는 연락장병의 생포, 사살 등 적의 후방을 교란하였으며, 1951년 3월 18일 굴량밭지구 필례에서 남침준비 중에 있던 대남 빨치산 지휘부를 전멸시켰다. 1951년 3월 20일 가리산리에 진출해 있던 적 빨치산 5지대의 대규모 공격을 받은 백골병단은 남하를 위장하다가 다시 북상 대승령 경유 용대리 방면으로 진출하였으나 적의 포위공격으로 부득이 설악산 중청봉을 경유하여 오색리 단목령(일명 박달재) 진동리 방면으로 진출, 적의 주저항선을 배후에서 돌파, 1951년 3월 30일 인제군 기린면 지역으로 철수 개선하였다. 이 유격작전은 적 후방지역 330km를 영하 30도의 혹한을 무릅쓰고 종횡무진 적의 지휘통신시설 파괴보급로의 차단 빨치산 지휘부 섬멸 연락장병 300여명 생포 적 사살 500여명 등 적 후방지역을 교란함으로써 아군작전에 기여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 작전기간중 목숨을 바쳐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 순국 산화하신 장병의 명복을 빌고 백골병단 장병이 이룩한 충용의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이를 귀감으로 삼고자 이 비를 건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