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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編 서원 · 제단 · 기념관 • 131 렸을 때 고독(孤獨) 청 빈(淸負)하였으나, 모든 일에 탁월하고 기절(奇節)을 좋아하였다 숭 정(뭘順)초에 서울(북경)에 유학하던 중 지현(知縣) 한승선(韓承宣)괴- 친교가 있었는데 한 (韓) 지현(知縣)이 역성(역城)을 지키게 됨 에 공이 22세 때 (1638년) 가을에 한지현과 같이 지키 더 니, 청병이 산동에 침입함에 바람에 따라 차례로 함락하는지라 공이 지현과 같이 민 병을 소집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응종(J應從) 하는 자 없어 성을 굳게 닫고 지키다가 결국 함락되 어 지현(知縣)은 전사하고 공도 또한 창에 찔려 기절히-셨다기- 그 다음날 정신이 회 복되고 다친 곳도 점차 나아져 신양관으로 송치되어 억류되었다. 바. 대동 배삼생(大同 裵三生) 휘 (iht)는 삼생(三生) 자(字)는 지중(之重)이니 1612년 6월 28일 대동(大|퍼)에서 출생하았 고 그 부친은 상생 휘(합) 산대(山大)이고 그 부인은 고씨(高民)이니 1619년 7월 23일에 났 다 공이 24세 때에 (1없4년) 적이 사방에 일어남에 각지에서 의병을 소집하여 고향을 보존 하다가 서 울(북경)로 향하여 여러 곳에서 적을 무찌르고 기내(幾內)에 이르니 그곳이 이미 청 병에 힘-락되었는지라 휘히(魔下)가 다 흩어지니 공도 또한 적에게 붙잡히어 적장 애리이­ (愛볕|씨)가 각가지 방법으로 위협하고 항복하라고 히-였으나 끝내 항복치 않음에 심양으로 송치 되어 심양관에 억류되셨다. 사. 청주 왕상생(좁州 王I좋生) 휘(討)는 문싱-(文햄) 지-(字)는 여징-(펴章)이니 1622년 12월 23일 산동성 청주부에서 났고, 그 부인은 조씨(펌E:;)니 1634년 12월 13일에 났다. 공은 어렀을 때부터 기절(奇節)이 있었 으며 숭정(핑뼈)말 사방에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님-에 의병을 모이- 적은 성을 쌓고 지방을 수호하다가 23세 때 (1없4년) 적에게 함락되고 공은 붙잡히어 심양관에 억류되셨다. 아. 제 남 왕상생(濟南 王1훌生) 휘(혐)는 이문(以文· 효중대왕이 지어주심) 처음 휘(펀)는 봉강(鳳범) , 자(字)는 기양(11皮 陽)이나 1625년 5월 26일 산동성 제남부 장구현 싱-원장에서 났다. 그 부친은 진사(進='=) 휘 (~함) 충추(江1씨10 字는 예수(禮守)이고 그 모친은 이부(更곰I~)상서(尙펌) 히-남(河南) 잉:유의 (楊有廢)의 따님이고, 그 부인은 호부급사 청주 황윤무의 따님이니, 1626년 6월 1일 산동성 청주부 안구현 동십리 에 서 나셨다 공이 12세 때(서기 1636년) 2월에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사방에서 적의 형세가 날로 치열하 여 동리에까지 침입하니 장례를 못 지내고 외조 상서공 별장 후원에 평장(平뿜)하고 옛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