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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읍성(河東邑城) 국가사적 제453호(2004.5.31.지정)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조선조 말엽 1700년대까지 오랫동안 고을의 읍기(邑基)가 자리했던 유서 깊은 터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景德王) 16년(757) 지명 개정에 따라 하동군으로 명명된 하동은, 군현(郡)제 실시와 함께 이곳에 관아를 두고, 태수·감무·현감·군수 등 명칭의 수령이 고을을 다스렸는데, 관아를 둘러싼 하동읍성은 고려 말엽부터 자주 출몰하는 왜구의 침범에 대비, 조선조 태종의 명으로 태종 17년(1417)에 축성한 것으로 전한다. 읍성은 금오산(金鰲山)을 마주한 해발 149m의 양경산(陽慶山) 중심에 자리한 하동현청을 둘러쌓았는데, 전체 길이는 1,400m, 성벽의 폭 4.5m, 높이는 약 2.5m였으며, 성벽의 바깥에 흙으로 또 다른 성벽을 두르고 그 사이에 4m 가량 깊이의 도랑을 파서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였다. 성안에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적대(敵坮) 11개소, 성문을 지키기 위 하여 성문밖에 설치한 옹성(甕城) 3곳,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덧쌓은 담벽인 여장(女墻) 588개소, 우물 5개소, 출입문이 4개소가 있었다. 특히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백의종군길에 이곳에서 이틀간 머무르며 고문으로 상한 몸을 추스르는 등,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가 깃든 곳이다. 왜란때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들의 침범으로 성은 크게 훼손 되고, 1703년 읍기가 오늘날의 하동읍 쪽으로 옮겨진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보존가치를 잃어 더욱 피폐해지고 말았는데, 최근 들어 그 역사성을 인정 받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복원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