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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2024년 4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 신했다. 입동 무렵 도랑을 파면 누 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 여 노인들을 대접했는데 이를 ‘도 랑탕 잔치’라고 했다. 또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풍속이 있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 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 락이나 마당은 물론 마을 입구 큰 고목에도 ‘고수레’하면서 뿌렸고, 이로써 잡귀들의 침입을 막는다 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팥죽을 뿌리는 것은 겨울철 먹이가 부족 한 짐승들을 생각하는 우리 겨레 의 따뜻한 마음도 담겨 있었다. 24절기에는 더불어 살기만 강 조하지 않는다. 추분(秋分)엔 중용 과 겸손, 그리고 향기(香氣)의 의 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뜻이 깃들 어 있다. 《철종실록》 철종 10년(1859) 9 월 6일 기록에 보면 “임금께서 ‘성 문의 자물쇠를 여는 데 대해 의견 을 모으라고 하시면서 종 치는 시 각은 예부터 전해오는 관례에 따 라 정하여 행하라는 가르침이 있 었습니다. 추분 뒤에 자정(子正) 3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 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 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 으로는 《맛깔스런 우리문화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 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등이 있다. 필자 김영조 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 른세 번 치던 일) 하게 되면, 이르 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 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 기록처럼 추분날 종 치는 일 조차 중도의 균형감각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도 덜 도 치우침이 없는 날이 추분인 것 으로, 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 지 않는 곳에 덕(德)이 있다는 뜻 이며 이를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추분엔 향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한 다.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다. 한여름 뜨거운 해 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벼는 그 안 에 진한 향기를 잉태한다. 이처럼 사람도 내면에 치열한 내공을 쌓 아갈 때 진한 향기가 진동할 것임 을 얘기한다. 또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 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 개를 숙인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 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렇게 추분 은 중용과 내면의 향기와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때다. 자, 이래도 현대인에게 전혀 의 미 없는 24절기라고 생각할 것인 가? 절기 때를 맞춰 볍씨를 담그 고 모내기하며, 가을걷이하는 일 이야 우리가 굳이 알 필요가 없을 터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 사짓는 것을 몰라도 편의점이나 대형할인점에 가면 얼마든지 쌀 과 푸성귀가 즐비하다. 하지만, 최 소한 이들 절기가 지닌 철학적 의 미는 살펴서 이 시대에 다시 적용 할 필요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