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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 3.1만세운동을 주도하신 14인 동지 김시범의 생가터
2010.10 조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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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
제주도의 3.1만세운동은 신좌면 조천리에서 시작되었다. 조천리의 유지 김시학(金時學)의 아들 김장환(金章煥)은 당시 서울 휘문학교 재학생으로 서울에서 3.1독립선언 이후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3월 15일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장환의 백부 김시우(金時宇)는 “우리도 대한민족이다. 독립운동에 결사 진력해 보자”고 하며 조카 김장환과 함께 선두에 서서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김시범·김시은(金時殷)·고재륜(高載崙)·김영배(金營培)·김연배(金年培)·황진식(黃鎭式)·김찬용(金燦容) 등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들은 조천리에서 좀 떨어진 산중 ‘미밑동산’에 들어가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맹세하고 신촌(新村)·함덕리(咸德里) 등 인근 주민들과 연락하고, 또 서당 학생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3월 21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경 김시범·김시은·고재륜 등은 물론 인근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약 500~600명의 시위군중이 조천리 ‘만세동산’으로 모였다. 김시범이 큰 태극기를 ‘만세동산’ 마루에 세우고 목 메인 음성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니 모인 사람 모두 감격하였다. 선언서 낭독이 끝나고 김장환이 앞에 나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니 모두들 만세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큰길로 나서자, 황급히 달려온 수십 명의 일본 무장대에 의해 시위군중은 해산되고 김시범 외 12명은 일본 경찰에 체포당하였다.
김시범은 3월 21일 제주 조천리 만세운동을 진두지휘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의 판결에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다.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4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