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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용 정내영 김종길 그밖의 여러 지사와 더불어 조국독립을 위하여 풍찬노숙하며 맹렬히 활약하였다. 각 지방의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국외로부터 무기를 반입하고 서경회 의용단 위임장 애국금 수합위원 사령서 군사경비단 단제인쇄물 등을 가지고 각처로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수차 상해임정에 밀송금하였다. 그러다가 동년 12월 8일 동지 김종길과 독립군 자금 모집차 의령군 모 재벌가에 잠입하다가 매복 중의 왜경에게 검거되어 경찰서로 연행 도중 권총으로 왜인순사 갑비수를 사살하고 동포 순사에겐 중상을 입힌 후 양인은 만주로 망명 탈출하여 4년여 조국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모종의 밀명을 띠고 밀입국하여 동지들과 공작 중 불행히도 1924년 한국독립운동단의 활동상황이 탄로되어 동지들과 함께 피검되니 혈기방장한 젊음의 나이로 사개성상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이것은 경북항일단 한국독립운동 사건의 전말이다. 공은 출옥 후에도 불타는 투지는 꺽이지 않아 다시 동지들을 모은 한편 해동청년회라는 사밀조직을 만들어 회관을 건립하고 후진들의 독립정신 고취에 쉴 줄을 모르시니 왜제의 악랄한 예비 검속령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괴로움을 겪음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구국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을 맞음에 감격과 환희속에서 여생을 조국 대한의 자유번영과 향토발전을 위해 진력하다가 1967년 2월 향년 76세로 영면하시니 묘는 전촌리 포일산 해좌이다. 장하도다. 굳굳한 기백으로 불사조같이 한 평생 지낸 공에게 대통감으로서 찬연히 빛나리라. 생각하면 조국이 국권을 되찾고 전국민이 재생의 기쁨을 누리게된 것 실로 공과 같은 투사들이 쏟은 정성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다. 배위는 월성 최씨 1892년 11월 9일에 나서 1964년 정월 14일에 졸하니 묘는 포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