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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춘분 125 흔히 말하는 세 끼란 아침, 점 심, 저녁을 이른다. 그 가운데 아 침과 저녁은 때와 끼니를 동시에 일컫는 말로 쓰지만 점심은 오직 끼니를 일컫는 말로만 쓴다. 아침, 저녁이 우리말이듯 점심도 그런 토박이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 다. 그러나 점심은 선종(禪宗) 곧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찾아 성 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파에 서 선승(禪僧)들이 수도를 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듯 아주 조금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점 ‘점(點)’에 마 음 ‘심(心)’을 쓴 것이다.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 은 고려시대부터라 하지만, 왕실 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작이었다. 보통은 9월 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아침저 녁 두 끼만 먹고, 2월부터 8월까 지는 점심까지 세 끼를 먹었다. 겨 울엔 낮 길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탓에 두 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춘분이 지 나면 농번기가 닥쳐오기 때문에 일꾼들의 배를 주릴 수 없었다. 일 을 시켜도 배불리 먹이고 시켜야 능률이 오르니 말이다. “각 관아의 점심 (點心)을 그만두게  하였다. 호조(戶曹) 에서 아뢰기를, ‘때 는 바야흐로 농사철 인데 한 달이 되도 록 비가 오지 아니하 니, 장래가 염려됩니 다. 바라건대, 각 사 의 선반(宣飯, 관아에서 관원에게  끼니때에 제공하던 밥) 과 점심(點 心)을 그만두게 하소서’ 하니, 임 금이 말하기를, ‘선반마저도 그만 두게 할 수는 없다. 또 가뭄이 점 심 때문에 온 것도 아니다. 배가  고파서 음식 먹는 것은 곧 하늘의  마음이니, 어찌 굶주리고 재앙을  물리치는 도리가 있겠는가? 이것 은 모두 정사(政事)의 실책에서 말 미암은 것이다.” 이는 『태종실록』 33권, 태종 17 년(1417년) 윤5월 5일에 있는 기 록이다. 호조(戶曹) 곧 호구(戶口, 집의 수효와 식구 수)ㆍ공부(貢賦, 공물과 세금)ㆍ전곡(錢穀, 돈과 곡 식) 등에 관한 일을 맡던 관아에서 농사철이 되었지만, 한 달이 되도 록 가뭄이 들어 걱정된다면서 끼 니와 점심을 그만두게 하자고 건 의하자 임금은 ’가뭄이 점심 때문 에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뜻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앞줄임) 내 작은 한 톨의 쌀로 몸 받아  올 때 하늘과 땅이 있어야 했고 밤낮이 있어야 했고 해와 달 비바람이 있어야 했다  농부의 얼굴을 뙤약볕에 그을 리게 했고 애간장을 녹이게 했고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하게  하고 땀 흘리게 했다  이제 사람의 밥이 되어 나를 바 치오니 작은 이 몸이 어떻게 온 것인지 오늘은 춘분, 밭갈이를 시작하는 날(출처, 크라우드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