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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6월 5일‘망종(芒種)’ 125 경우도 있었다. 소나무 껍질로 송구[松肌]죽을 쑤어먹고 쑥을 캐어다가 쑥버무 리를 해 먹거나, 설익은 보리를 베 어서 보리개떡을 해먹는다. 그렇 게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다행이 었다. 못 먹어 부황(浮黃, 오래 굶 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병)이 나고 아이들의 배는 올 챙이배처럼 되었으며, 어른들은 허기진 배를 우물가에서 물 한 사 발로 채워야 했다.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조 선시대엔 흙을 먹는 백성이 있었 다고 한다. 가장이 먹고살 것이 없 자 자살하거나 식구를 버리고 도 망간 것은 물론 자식을 팔아 끼니 를 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또 먹 거리 대신 목화씨를 먹고 죽었다 는 기록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 기까지 있다. 《영조실록》에 보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기관인 경상도 진휼장(賑恤場)에는 굶는 백성이 17만 9천 8백 65명, 떠도 는 거지가 1만 1천 6백 85명, 사 망자가 1천 3백 26명이었다.”라 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굶는 백성 의 숫자가 많았다. 이때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먹 거리를 구황식물 이라고 했다. 우 리나라에 자생하 는 구황식물(救荒 植物)은 무려 851 종이고, 농가에서 평소에 먹는 것만 도 304종이었다. 그 가운데 소나무 껍질, 솔잎, 솔방 울, 도라지, 칡, 도 토리, 달래 따위 의 나물 종류, 느릅나무 잎, 개암 따위는 인기 먹거리 품목이었다. 특히 요즈음 가로수로 인기를 얻 고 있는 이팝나무는 그 꽃이 멀리 서 허기진 농부가 흰쌀밥으로 본 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릿고개(맥령, 麥嶺)’의 연원 그러면 여기서 그 헐벗음의 상 징 보릿고개란 무엇이고 언제부 터 생겼는지 알아보자. 《조선왕조실록》에도 보릿고개 를 뜻하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물 론 한자로 쓰여 있다. 맨 먼저 보 이는 것은 《세조실록》 11권 4년 (1458) 2월 7일의 ‘춘기(春饑)’인 데 ‘봄의 가난한 때’라는 뜻이다. 그밖에 궁춘(窮春), 춘빈(春貧), 춘 기(春飢) 춘기근(春飢饉), 춘궁(春 窮), 궁절(窮節)”과 같이 다양한 이 름으로 불렸다. 특히 ‘보릿고개’ 라는 이름으로 딱 들어맞는 ‘맥령 (麥嶺)’은 《정조실록》 12권, 5년 (1781) 11월 29일을 시작으로 정 조 때만 세 번 등장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보 이는데 1931년 6월 7일 치 동아 일보의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 개를 못 넘어 죽을 지경"이라는 기 사가 그것이다. 따라서 보릿고개 는 1950~60년대에 생기거나 그 때 처음 불린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시대부터 쓰던 말인 '맥령'이 우리말 보릿고개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봄에서 여름으 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헐벗고 굶 “맥령(麥嶺, 보릿고개)이 나오는 《정조실록》 5년 11월 29일  치 원문(왼쪽 빨간 줄 표시부분), “보릿고개(麥嶺期)”가 나오 는 1931년 6월7일 치 동아일보 기사(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