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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안동 내앞마을 125 헌신적 의무를 다하지 않으리오” 라고 하면서 신교육의 확산에 힘 을 쏟기 시작했다. 결국 김대락의 사상적 전환은 시대의 흐름에 적합한 방법을 찾 아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산물이었 다. 그의 신학문에 대한 수용과 그 에 따른 실천은 당시 안동은 물론 영남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 으켰다. 『황성신문』은 그의 인식 전환을 ‘교남(嶠南-영남)교육계의 새로운 붉은 기치’로 대서특필했 다. 실로 김대락은 한 시대의 ‘붉 은 기치’였던 것이다. 1910년 나라가 멸망하자 협동 학교는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내앞마을의 김대락·김동삼을 비 롯한 협동학교 주역들은 만주 망 명을 선택했다. 이는 신민회의 만 주지역 독립군기지 건설운동과 그 맥이 닿아있다. 이들은 만주로 망 명해 신흥학교를 세우고, 항일무 장투쟁을 이어갔다. 국내에 남은 사람들은 3 · 1운동과 사회운동으 로 일제에 저항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재 단법인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설립 및 지원조례” 제3조에 따라 경북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를 수 집‧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 함으로써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 켜온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 신을 계승하고 민족문화의 정체 성 확립 및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 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안동은 유교문화권의 핵심지역 으로 선비정신의 정수로 일컬어 지는 곳이다. 퇴계 이황 학맥의 정 통을 계승한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학자들이 국난 극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 전국 어디 보 다 도 뚜렷할 만큼 많은 독립유공자 및 자정순국자를 배출하였다. ‘독 립운동의 성지 ’ 안동 내앞마을에 세워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은 살아있는 유교문화와 경상북도 독립운동 역사를 교육하고 나라사 랑 정신을 배우는 21세기 국민정 신의 교육장이 될 것을 표방하고 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과 내앞마을의 모습     전시관 내부 전경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들 명단이 새겨져 있는 야외 기념물(이상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