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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리만큼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다(아쉽게도 전 국원이 방학을 바쳐 고생했던 것만큼 방송이원활하지는못했다). 다만 숙원 사업이라 불리었던 TV 방송에 대한 열정과 시도는 훗날 우리가 방송국 을 떠날 때쯤 결정했던 언론정보학부와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인터넷 방송국으로 꽃 을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장만 마련하고 떠났지만, 당시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열 정과 재능을 갖춘 선배님들과 불평 없이 맡아서 이어준 후배님들 그리고 새롭게 수혈 된 언론정보학부 등의 재능 있는 실력자들의 합류로 인터넷 방송국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 밖에도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방송국 홈페이지(VOU.co.kr이라는 도메인에서 볼 수 있듯 방송 사업을 꿈꿨다)가 이 시기 개설되었다. 또한 하이텔과 제휴한 인터넷 라디 오 음악방송을 통해 회기동 1번지를 벗어나 보는 시도가 있었고 (이 사업으로 영상 장비 를 구입해 기증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학내에 많은 집회와 행사가 있었고 노천까 지선을끌어다가이를생중계하는모험을하기도했다. 다양한 사업에 모험(?)을 감행하느라 우리 기수는 물론 모든 국원들이 고생을 참 많이했었던것같다. 지금은‘열정’이라는말이좋지않은의미로쓰이는경우가있지 만 그때 우리들은 순수하게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일들을 해나갔던 것 같 다. 이제 하나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때만큼의 그 뜨거운 열정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그 기억은 가끔 무력감에 빠질 때 우리를 다시 뛰게 하는 에너지가 되 는 것 같다. “나도뜨겁게타올랐던적이있었다! 무엇이든할수있다!” # 에피소드2 방송제 영상 드라마 제작을 위해 회기동에서 촬영을 하던 중 동네 꼬마들로부터 사인을 해달라는 공세를 받은 기억은 아직도 입가에 미소 짓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하는장면에서는엑스트라로참여해준고마운아이들이다. 기별 Essay |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