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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지구 전투 기간 : 1950.9.5 ~ 13(9일)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 부대 : 국군 제7사단, 제8사단 VS 북한군 제15사단 특징 :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인 영천을 사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 영천지구 전투는 1950년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이 9월 공세를 통해 영천을 점령했을 때, 국군 제2군단(7,8사단)이 북한군 15사단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활한 전투이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1군단과 2군단을 잇는 유일한 동서 보급로인데, 9월 5일 북한군은 전차 12대와 곡사포 56문을 앞세운 5개 연대 12,000여 명의 병력으로 영천을 기습하였다. 2군단과 8사단을 영천 동남쪽에 배치아혀 적 15사단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고, 7사단 예하 2개 연대를 투입해 3일 동안 교전 끝에 영천을 탈환하였으며, 이어 북한군 9월 공세 이전의 주저항선을 회복하였다. 영천지구 전투의 승리는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고 동시에 총반격을 단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여 9월 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여건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1950년 12월 '별오리 회의'에서 김일성이 '우리는 영천을 점령했을 때 승리할 수 있었고, 영천을 상실함으로써 패배했다.'라고 말할 만큼 6.25전쟁의 분기점이 된 전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