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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며 가두행진에 들어갔다. 또 선생은 왜경을 습격하여 일인 서장으로 하여금 대한독립만세를 공창하게 하는 등 구국운동은 더욱 거세어갔다. 죽산읍는 물론 용인 안성게까지 3.1운동의 기운이 한층 고조되었으나 왜군헌병대의 무력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선생은 이 거사의 주동자로서 모진 고문과 악형을 감수하며 대한독립을 외치다 보안법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인번호 3285호로 징역 1년6월의 옥고를 치루었으나 출감후에도 조국광복운동에 불면불휴하였다. 이로부터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큰 뜻을 펴지 못하시다가 광복과 함께 대한독립촉성회 대한청년단국민회장의 일을 맡아 몸과 마을을 다하셨다. 만년에는 초야에서 노인회일로 진력하시다가 1977년 6월 29일 여생을 마치셨다. 그 일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대통표창을 비롯한 여러차례의 포상이 되었다. 한스러운 지난날을 가슴에 안고 유명을 달리 하신 선생의 일신은 늘 애국에 있었으니 그 생애는 자손만대에 전해져 겨레의 거울이 될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