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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의병(丁未義兵)의 전국적인 활동 원주진위대 소속이었던 특무정교(特務正校, 군인 장교) 민긍호(閔肯鎬)는 동료인 박준성(朴準成)·손재규(孫在奎) 등의 인물과 함께 각자의 의병(義兵) 부대를 편성했고, 강원도와 충청북도·경기도 일대에서 일제에 대항해 맹활약하였습니다. 정미의병은 이전 1905년에 시작된 을사의병(乙巳義兵)에 이어 전국적인 항일의병으로 성장, 확대되었습니다. 강화지역의 허위(許蔿)와 연기우(延基羽), 호남지역 장성의 기삼연(奇三衍), 나주의 전해산(全海山), 함평의 김태원(金泰元)·심남일(沈南一), 무주의 문태수(文泰洙), 임실의 이석용(李錫庸), 경기 북부일대에는 이강년(李康秊)과 경상도 영해의 신돌석(申乭石), 황해도 평산의 박정빈(朴正彬)·이진룡(李鎭龍), 평안도의 김여석(金汝錫), 함경도의 홍범도(洪範圖)·차도선(車道善) 등 많은 인물들이 의병부대를 일으켜 항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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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전국에서 일어난 정미의병 세력은 총 48개 부대(鎭), 1만여 명에 달하는 군인들로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을 결성, 서울진공작전을 수립했지만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으면서 무산되었고, 여러 의병부대는 분산되어 독자적인 항일전을 수행해갔습니다. 이후 정미의병 활동을 펼치던 많은 이들은 활동 무대를 북쪽으로 옮기면서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항전을 계속 펼쳐나갔고, 해방(解放)의 토대를 만들어낸 대한독립군(獨立軍)으로 계승·발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