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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하는 일에 외아들이라고 빠지고 처자식이 막는다고 망설인다면 나라는 누가 지키는가 한쪽 다리가 없고, 두 눈이 먼다 해도  마땅히 행해야 할 구국의 길 시력이 나쁘다고, 너무 가볍거나 뚱뚱하다고 나이가 많고, 학업에 임하고, 생계를 위해서라고 갖가지 핑계로 다 피한다면  이 나라는 다시 왜적의 발길에 짓밟히리라 글  이오장(시인 · 한국문인협회 이사) 나이,학업,생계를 위해서라고 핑계대지 말라 부산경찰서 투탄의거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  홀어머니 아래 자라 부산상업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부터 독립운동을 모색하여 열여덟살에 ‘구세단’을 조직하여 항일 잡지를 발간하다 체포되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에 입단하고 일제 통치기관을 타 격하기 위해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입국했다. 1920년 9월 14일 고서상(古書商)으로 위장하고(장발에 밀 짚모자, 흰색 조선 옷을 입고)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에게 폭탄을 던져 부상을 입혔으나,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 1921년 3월 말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감 옥에서 복역중 “왜놈 손에 죽느니 내 스스로 죽겠다”며 단식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박재혁(1895.5.17.~1921.5.11) ㊷ 순국선열, 지하에서 울리는 소리 ㊷ · 박재혁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