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page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북한산 진관사 123 이곳에 머물렀다는 실제 역사에 따라 나온 것이다. 이 사극이 상당 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 절을 방 문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2009년 5월 26일 칠성각 수리 중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발견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 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 을 해체 · 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서울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되었다. 태 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 문류 19점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 · 『조선독 립신문』 · 『자유신종보(自由晨鐘 報)』 · 『신대한(新大韓)』 · 『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 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 · 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 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 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 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 려로 추정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 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 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 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 상되었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 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 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 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에도 태극기와 태극문양 및 태극기 관련 기사 가 실려 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특 히, 태극과 4괘가 우주 만물의 기 본 요소나 만물의 생성 · 변화 · 발전 하는 모습을 의미한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힘과 사랑’을 토대 로 ‘자유와 평등’을 온 세상에 실 현해나가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 한 점은 매우 주목된다. 이처럼 독 립신문은 당시 태극기에 대한 인 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진관사 태극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태극기의 변 천사와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 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또 사찰에 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진 관사 태극기는, 불교 사찰이 독립 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 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 실을 말해준다. 태극기 등이 발견된 곳에 설치된 안내 설명판 ‘서울 진관사 태극기’ (보물 제2142호, 국가유산청 제공)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이 발견된 칠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