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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탈환 전투
기간 : 1950.10.18 ~ 20(3일)
지역 : 대동강.남강 유역, 평양
부대 : 국군 제7사단,美제1군다 VS 북한군 제17,32사단
특징 : 국군 최선두로 적의 수도 평양에 입성하여 북한군에게 심리적으로 깊은 패배감을 안겨줌
평양 탈환 전투는 7사단이 국군의 38도선 돌파의 기세를 몰아 적의 수도인 평양에 10월 18일 최선두로 입성하여 북한군에게 깊은 패배감을 안겨준 전투이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이래 파죽지세로 북진을 계속하는 국군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양만은 우리 국군이 먼저 점령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육군참모장 정일권 장군은 2군단장 유재흥 장군에게 급히 대통령의 명령을 전달하였고, 군단장은 직접 7사단 사령부로 달려가 사단장 신상철 장군을 대동하고 8연대를 방문해 김용주연대장에게 평양 탈환 임무(육본작명 218호)를 부여하였다.
10월 18일 국군 1사단이 북한군의 끈질긴 저지로 평양 진격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7사단 8연대 3대대가 대동강 상류를 도섭하여 적의 수도 평양에 진입하였고, 당일 17일경에 김호규 대위가 지휘하는 9중대가 당시 북한군 전선사령부가 위치해 있던 김일성 종합대학교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평양 최선두 입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7사단의 전공은 북한군에게 정치적, 심리적으로 깊은 패배감을 주어 저항의지를 한 번에 꺽으면서 국군의 위용을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