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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 3.1만세운동을 주도하신 14인 동지 김희수의 생가터
2010.10 조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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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계속된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朝天里)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유학자이자 지사인 김시우는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김장환과 함께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김희수는 만세시위의 계획을 듣고 적극 찬동하여 거사준비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장소는 조천리에서 약간 떨어진 미모치(味毛峙; 일명 미밑 동산, 혹은 만세동산이라 일컫음) 동산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신촌(新村) 함덕리(咸德里) 등 인근 부락과 서당 학생들에게도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알리며 다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오후 3시경, 5,6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미모치에 모여들었다. 그런 가운데 김시범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김장환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김희수를 비롯한 시위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시가지를 향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들은 출동한 일본 군경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으며, 김희수를 비롯한 중심 인물 12명이 피체되었다. 이어 22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다시 많은 군중들이 모여 검속된 애국인사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이 일로 이해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