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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민몰될가 하여 고종 경인년 공의 6세손 광릉령공 휘 석이 소두가 되고 향사 100여명이 연서하여 소지를 올린 바 남원부사와 전라감사를 거쳐 조정에 상주되어 무신역란에 백의창의로 부전토평한 공을 인정하여 고종 임진년 5월 서거한지 150여년만에 충신의 정려를 명하였다. 그러나 미구에 국망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정표의 일을 애태우며 미루게 되었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에야 후곤들의 미성을 모아 소원을 이루게 되니 승현 족숙이 불녕에게 기문을 청하므로 큰 소원이 이루어짐의 기쁨이 앞서 불고불문 사양치 않고 사실대로 기술하였다. 후예들이여! 효를 옮겨 충을 다하고 숨은 덕과 아름다운 행적으로 생을 일관하였으니 그 크고 넓은 음덕이 어찌 후손에게만 미칠까. 후곤은 물론이요 온 세상 람 거울로 삼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