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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 (당시38세) 화 장 1966년 3월 12일 전남 장흥 출생 1987년~1989년 군복무 부산 대우자동차 협력업체 3년 근무 천안 피혁가공공장 1년 근무 2001년 6월 장흥교통(유) 입사 2002년 4월 장흥교통(유) 퇴사 2003년10월 장흥교통(유) 재입사 2004년 5월 21일 군수면담을 요청하며 1차 분신자결 기도, 조합원들의 저지로 무산 2004년 5월 26일 오전 9시 40분경 근무 중 음독 자결 |24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66년 3월 12일 장흥에서 태어났다. ’89년 군복무를 마치고 부산 대우 자동차 협력업체에서 3년 근무하고, 다시 천안 피혁 가공공장에서 1년 근무하는 등 줄곧 노동자의 삶을 살아왔다. 동지는 ’01년 고향으로 돌아와 6월 장흥교통에 입사하였으나 10개월만에 퇴사하고 다시 ’03년 10월에 재입사하였다. 장흥교통 은 운전기사의 경우 종일근무로 월 23일 만근제도로 월급여 110만원의 최저임금 수준의 기아임금체계를 유지하여왔다. 또한 이마저 체불이 되어 노동자들이 ’04 년 1월 28일 합법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사측은“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 마음대로 해 봐라! 2월부터 급료도 지급하지 않을 테니 너희 노조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며 거의 깡패수준의 막가파식 탄압을 가해 조합원 3명은 결국 스스 로 퇴직하고 14명의 조합원이 남아 버텨왔었다. 장흥교통은 적자 운운하면서 노동탄압을 자행해 오면서 군청지원 7억원의 보 조금을 받으면서도 1년동안 1억 4천만원의 부당요금을 징수했음이 노동조합에 의해 밝혀졌다. 또한 이들은 군소유의 버스를 부당대여하여 이득을 취하는 등 온 갖 비리와 폭리로 돈을 챙기였다. 동지는 전원해고, 해고예고 등 막가파식 노동탄압과 관리감독 기관인 군청의 방관에 항의하여 5월 21일“장흥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김○○ 군수를 직접 만나야만 한다”며 1차 분신을 시도하였으나, 조합원들이 이를 저지하기도 하였 다. 이에 사측은 체불임금의 일부를 지급하였으나, 노조탄압의 강도를 더해 갔 다. 또한 관리감독 관청인 장흥군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수수방관 여론만 살피고 있었다. 결국 동지는 5월 26일 회사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다음날인 5월 27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하였다. 사측은 마치 동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처럼 개 인적인 문제로 몰아가는 등 파렴치한 짓을 계속하였다. 동지의 죽음 몇 달 전부 터 불거진 문제였는데 행정관청은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것에 대한 항의와 노조탄 압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끝내살리라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