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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거사였기에 많은 무명 선열의 고혼이 아직도 천하에서 방황하니 어찌 지사의 애정 이에 길이있겠는가 본향의 지소는 무명의사가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록 산곡이긴하나 옛부터 특유의 향약과 전통을 숭상하는 마을로 일찌기 동학혁명시에는 보국안민의 기치를 올려 왜구의 잔인성을 겪었기에 침상에도 주체성 확립에 여넘이 없었다. 기미의 2월 독립선언서가 은밀히 전해지자 서당 중견의 주도하에 혼연일치되여 빈틈없는 준비를 마련하고 이날이 되자 당산에 제향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질서있게 배다리시장에 총집결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하늘높이 치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의분어린 만세소리는 각처에서 모여든 수천군중의 감격적인 환호성과 더불어 천지를 진동시켰다. 적의 발광또한 대단하여 무차별한 총탄을 난사하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 의거가 지소부락민의 주동임을 알게된 왜병 수십명이 부락을 침공하자 이종인 정상정 박영묵 정윤용 정재기 정의용등 제공은 주모자라 표명하고 피체되어 일시는 극형까지 언도받았다가 수년여의 옥고를 치루었다. 이분들의 절의는 하동군지의 절의편을 장식하고있다. 이 지소부락의 의거는 부락민의 인화단결과 투철한 국가관에서 마음을 뭉쳤기 때문이고 의에 불타는 애국사상을 가졌기에 이 같은 선봉이 쏟아졌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았기로 이의 성취가 이루어진것이다. 그 늠연한 기상이 바로 민족정기이니 이 정기 저 금오산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