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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부호 처단
광복회 포고문
슬프다. 우리 동포여! 지금은 어느 떄인가? 4천 년 종사는 멸망하고 2천만 민족은 노예가 되어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굴욕이 극에 달했다. 슾프다. 저 왜놈들은 오히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날이 식민 탄압을 더하여,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멸망시키려고 기세등등하고 있다. (중략) 나라는 되찾아야 할 것이고 왜놈은 토벌되어야 하며, 공적은 세운 다음 기다라야 할 것이다. 그날은 어찌 즐겁고 장하지 아니겠는가? 만약에 흉적에 아부하여 기밀을 누설하고 재앙을 동포에 넘기거나 또는 본 광복회의 규약을 준수하지 않고 기회를 그르치는 자들은 본 회칙에 정한 규칙에 따라 처벌한다. 슬프다. 우리 동포는 뜨거운 마음과 피로써 이 기회를 통해 서로 돕고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후략)
경북 풍기에서 결성된 광복단은 1915년 대구지역의 조선국권회복단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합하여 '광복회'로 통합되었다. 광복회는 독립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 후 혁명기지를 건설하여, 무장을 갖추어 독립을 달성하는 방략을 세웠다. 군자금 모집과 조직의 활동 방략을 알리기 위해 '투재강령 7조목'을 발표하고 자산가들에게 포고문을 보내어 자발적인 의연금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의연금 모집은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회는 히우 포고문의 효력을 높이고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친일 부호의 처단 등 의협 투쟁을 전개하였다. 1917년 말 칠곡의 부호 장승원을 처단하였으며, 충청도지부 요원들을 중심으로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하는 등의 행보로 친일 부호들에게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