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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26년 3월 Column 명사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1876년 2월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이 일본의 압도적 군사력 앞에 굴복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국방력이 취약하면 앞으로도 국가적 굴욕을 당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은 결국 나라를 지켜내고 키워냈다. 개항 150주년을 맞아 지난날 우리 겨레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순국자들을 비롯한 애국자들에게 새 삼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뜻을 이어 받자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조선 · 대한제국 지배층 부패 · 무능, 국가 멸망 요인 3 · 1독립운동 정신 · 위대한 국민, 오늘날 발전 가능케 해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1392년 음력 7월 17일(양력으로는 8월 15일)에 개국한 조선왕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중국에 대해서는 ‘사 대(事大)’하고 남쪽의 일본 그리고 북쪽의 여진족들을 비롯한 야인(野人)에 대해서는 ‘교린(交隣)’했을 뿐 , 그 밖의 많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문을 닫는 자기고립정책을 썼다. 그러나 1863년 음력 12월 31일(양력 18 64년 1월 21일)에 제26대 고종이 즉위한 시점을 전후한 시기에는 더 이상 그 정책을 쓰기 어려웠다. 서양세 력이 ‘은둔의 나라’로 불린 조선을 향해서도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함포외교에 개항을 결정한 조선왕조 1863년 12세의 고종이 즉위하면서 아버지 흥선군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 봉했고, 그는 1873 년 11월까지 사실상 섭정(攝政)의 역할을 맡으며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그는 철저히 척화(斥和) 정책을 쓰 면서 서양제국의 개국 요구를 묵살했다. 그러나 고종이 만 21세가 되어 친정을 베풀기 시작하자 정권은 고종 의 왕 비 민비(閔妃)와 그 척족세력에 넘어갔다. 1868년에 왕정복고를 통해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유신체제를 확립 한 일본은 조선침략을 엿보고 있다가 조선 내부에서의 권력 이동에 주목해 1875년 8월에 서울 앞의 강 화도 에 군함 운양호(雲揚號)를 파견하고 무력시위를 벌여 조선왕조를 제압한 뒤, 1876년 음력 2월 3일(양력 2월 조선 개항 150주년에 되돌이켜본 우리 겨레의 역사 : 애국자들이 나라를 지키고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