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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25년 9월 Column  명사 칼럼 ② 작은 소리 큰 울림  서울에 한정시켜 볼 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순국 인사들을 비롯해 애국 열사들을 기리는 곳으로 최소한  네 곳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동작구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으로,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의 전사자들이 모셔져 있다. 이어 용산구 효창동의 안중근 의사(가묘)와 윤봉길 의사 등 여덟 분을 모신 공원, 중구 남산동의  안중근 의사 동상과 기념관, 그리고 서초구 양재동의 윤봉길 의사 동상과 기념관이다.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넋을 기려다오!”: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전사자들에게 바치는 헌시 대북화해 추구하되 북한정권 무력도발 경계해야 기업 · 정부, 국민 생명보호 가장 중요시하며 최선 다해야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이 성역들 가운데 필자가 자주 찾는 곳은 필자의 거주지에 가까운 ‘윤봉길의사기념관’이다. 윤봉길 의사 를 모신 곳은 윤 의사의 아호 매헌(梅軒)을 따서 ‘매헌 시민의 숲’으로 불린다. 원래 ‘양재 시민의 숲’으로 불 리었 으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이성섭(李聖燮) 상임이사의 열정적 발의와 몇 해에 걸친 헌신적 노력 에 서 초구 구민들의 호응이 합쳐지고 서울특별시가 시민들의 여론도 고려한 뒤 마지막으로 결정해 ‘매헌 시 민의 숲’으로 바뀔 수 있었다. 새삼 설명이 필요없듯,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에 중국 상하이를 불법 점령한 일제의 고위급 군(軍 ) 및 정부 인사들이 자축 행사를 벌이던 식장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을 비롯한 침략 의 수괴들을 도륙함으로써 세계만방에 조선의 독립의지를 과시했다. 그는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순국했 으나, 그의 의거는 대한민국 건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기념관 정문을 나와 길을 건너면 곧바로 ‘양재 시민의 숲’의 ‘동부(東部) 공원’에 들어서게 되고, 거기 서 네 개의 위령탑 또는 추모비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들 가운데 첫째가 ‘유격백마부대충혼탑’이다. 6·25전 쟁 첫 해인 1950년 10월 하순에, 유엔군의 반격을 받아 붕괴되어 가던 북한정권을 구출하고자 개입한 중공군 을 상 대로 싸우려고 평안북도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2,600여 명은 1950년 11월 22일에 평안 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