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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慕塔의 象徵(추모탑의 상징). 무릇 반세기 (1894~1945)에 걸쳐 조국광복을 위한 한국독립운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고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제 한말의병(1894~1915)은 우리 독립운동사상 그 서두를 장식하면서 이후에 전개된 모든 독립운동을 불러 일으킨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순국정신과 전통은 독립군과 광복군으로 승화 계승되었다. 백암 박은식은 그의 '혈사'에서 의병은 민병으로 우리 민족의 국졸이다. 무기가 없을지라도 순국할 뜻을 결연히 세우고 맨주먹으로 칼날을 무릅써 뇌장과 살갗은 창끝과 살촉에 발라지면서도 조금도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고 하였거니와 망국에 처하여 의병들이 지닌 결사구국의 결의가 그 얼마나 고귀하였던가. 당한 통사에서 대항한 혈사로 이겨낸 한말의병의 위대한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였음인가. 또한 의암 유인석은 '격문'에서 화가 복이 되건 죽엄을 약속하고 지킬 따름이이니 말피를 입에 바르고 함께 맹서함에 승패와 이둔은 예측할 바 아니다'라고 하였듯이 그들은 성공과 실패는 애당초 헤아리지 않았고, 兵은 패할지라도 義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위정척사적 신념과 용솟음치는 우국애정에서 눌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의병들은 책을 덮고 갓을 벗어 서투른 손에 창검을 들면서 역사의 노도 탁랑 속으로 뛰어든 것이고, 흔연히 민족혼의 부름에 오직 순국으로 응답하고자 하였으니 그 기개가 얼마나 장열함이며, 어찌 그 순국대의앞에 감흡함이 없을 소냐. 그러므로 광복의 성전에 쓰러진 의병 선열의 피맺힌 위훈을 오늘에 기리면서 글자위에 실어 추념하고자 함이다. 3.1운동은 한국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이었고, 가장 숭엄한 한민족의 표상이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녀온 동방의 백의민족, 우리 겨레가 국치 이래 국혼의 불멸을 자증하여 한국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날이 1919년 3월 1일이요, 삼천리 방방곡곡에 청혈이 흐르고 생육이 찢어지던 그날의 민족적 거사가 바로 기미년 3.1운동이었다. 그러기에 그 때 그 결심이 비장치 않을 수 없었으며, 다져진 민족정기에서 우러난 독립운동이었기에 그 기개가 장엄치 않을 수 없었다. 실로 민족의 굴욕은 죽엄보다 오히려 참기 어려웠고, 자유의 희원은 생명보다 차라리 소중하였거늘, 시위 중에 흘린 겨레의 핏자국은 필경 역사의 흔적으로 기억될 것이며, 폭악한 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힌 국치민욕은 민족의 형극으로 새겨두리라. 을사년 대욕은 당하여 위암 장지연은 '시일에 방성대곡한다'하였거니와 헌병경찰통치의 참고에 혈루어린 곡성은 민족의 골수에 그 얼마나 사무쳤던가. 그래서 망국으로 암울했던 역사의 질곡에서 광복에로 역사의 수레를 밀고 간 선인들이 몸짓이 곧 3.1운동이었고, 민족의 앞날을 선도한 지로탑의 역사를 3.1운동이 해낸 것이 아니던가. 참으로 3.1운동은 지울 수 없는 민족의 이정표가 되었고, 잊을 수 없는 민족의 피발림 그대로 빛나는 십자가요, 민족의 부활이 며, 생명이 되었나니, 이제 박해와 치욕의 역사를 씻어준 3.1운동으로 영원히 각명할 것이니라. 인류평등의 대의를 천하에 극명하고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겁토록 향유하는 그날의 3.1정신에서 상실된 국통이 상해망명정부 수립으로 소생되었고 인류공존의 특권을 전취하고자 결의한 그날의 3.1정신에서 아시아 약소국가의 민족운동과 저항운동의 선구가 되었거늘 3.1운동이야말로 세계사적 의의를 아울러 지닌 겨레의 금자탑이 아니랴. 이에 우리는 위대한 3.1운동을 현양하며, 영원불멸의 민족적 3.1운동을 승리의 역사로 빛내고자 함이다. 우리민족은 역사상 어떠한 침략과 억압속에서도 유순나약한 굴종으로 나라를 보전하려 하지않았다. 때문에 일제가 침략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감행하는 동시에 이 땅을 군수병참 기지화하면서 물력(공출미 등)과 인력(징용,학병,징병,정신대) 동원에 광분할 적에 또한 민족말살을 꾀하여 한민족을 노예화하고 경제적 수칼과 황국신민화를 노골화할때에, 우리 선인들은 무력투쟁과 의열투쟁 그리고 문화(정신)투쟁으로 대결하여 피를 뿜는 혈전을 벌이는가 하면, 쓸개 씹으면서 조국광복에 헌신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국외에서는 망명정부를 세워 국통을 이어갔고, 국내에서는 언론,종교,교육,학술,예술 등의 문화투쟁을 통하여 민족행의 수레바퀴를 바르게 이끌어 가기에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지사들은 피끓는 필진을 휘둘러 민종정기를 일깨우고 민족의 얼을 살리며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는가 하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폭로시켜 대일전쟁에 박차를 가하는 언론투쟁을 펼쳤다. 자유.평등.정의.양심을 신조로 한 종교단체의 독립투쟁의 본거지가 되었고, 신앙인의 의기와 용기는 밀제의 총칼 앞에서 비굴함이 없이 종교투쟁을 벌이지 않았던가. 또 사학을 세워, 신예투사로 양성한 그들이 바로 독립운동의 기수요, 핵심적 전위대로서 항일투쟁(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비밀결사 등)을 전개하였으니, 이것이 곧 교육투쟁의 소산이 아니랴. 한편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역사를 뒤지고 피와 혼이 서린 내 말과 내 글을 바로 다듬어서 민족투쟁의 저력을 길러낸 학술투쟁이 하며 시와 음악으로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애국정열의 붓으로 피를 찍어 글을 짓던 지사들의 예술투쟁은 민족투쟁의 일환으로 전개한 문화투쟁이 아니던가. 이에 우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문화투쟁을 전개한 선인들의 항일정신과 민족정기를 오늘에 되살려 조국통일의 의지로 다지려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