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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⑨ 119 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 인도교와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6일간의 한강방 어선전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독립운동가 출신 김홍일 장 군(1898-1980)이었다. 6·25 한국 전쟁 발발 당시 노량진우체국 뒤 편에 살았던 김홍일은 독립운동 의 역사에서도 우리에게 결코 낯 선 인물이 아니다. 한국광복군 참 모장을 지내기도 했던 김홍일은 상하이(上海) 병공창의 병기창 주 임으로 있던 1932년에는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사 용한 폭탄을 제조하여 백범 김구 를 통해 전한 인물이기도 했다. 한편, 1937년 7월초 동덕여고 보 사제지간이었던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이관술(1902-1950) 과 박진홍(1914-?)이 비밀리에 만 나 조직 재건 방침을 논의한 곳도 노들나루공원 앞에 있던 노량진 전차종점이었다. 1932년에 벌어 진 노량진소년독서회 사건과 조 선공산당건설준비위원회 사건의 비밀아지트도 이 주변에 있었다. 한강인도교에 서려 있는 독립운동 과 민주화운동의 역사 한강인도교는 1917년 개통된 다리로 한강에 설치된 최초의 인 도교였다. 한강인도교는 1919년 3 · 1운동 을 준비하던 이인환(이승훈, 1864- 1930), 이필주(1869-1942), 오화영 (1880-1950) 등 기독교계 민족대 표들의 비밀회동 장소(2.26)로 이 용되면서 독립운동의 역사와 인연 을 맺는다. 이후 한강인도교와 그 주변에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흔적 을 남겼 다. 193 0년 여 름 한강 인도교 아래에 서 보트 를 타고 비밀회 동을 했 던 강진 (1905 - ? ) 과 이종림 (1900 - 1977), 오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한 직후인 1932년 8월 2일 정신 여학교동문 환영행사에 참석하여 한강인도교 아래에서 동문들과 ➌ ➌  이양재의 광주공산당협의회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1936.3.6)  ➍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박양순(「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➍ 용수를 쓰고 경찰에 끌려가 는 박진홍(『조선중앙일보』,  1936.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