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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⑧ 119 거주), 안순서(신수철리 거주) 등 ‘의병 3의사’는 러·일전쟁이 시작 된 상황에서 원래는 용산역에 있 던 일본군의 보급기지창을 폭파 하려고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경의선이 일제의 조선침략을 가 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을 직시하고 계획을 바꿔 경의선 철도를 파괴하였다. 일제는 이를 복구하는 데 20여 일의 시간을 허 비해야 했다. 이들 세 의병은 일제 당국에 체 포되어 ‘철도파괴범’이라는 죄목 으로 1904년 9월 21일 마포구 도 화동 360-390일대 야산(공덕리 공동묘지 아래)에서 처형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6일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포전차종점과 동막흥영학교 터, 3·1운동의 역사 현장 마포전차 종점은 1919년 3월 1 일 저녁 8시경 1천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인 곳이 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던 시민과 학생들은 전차를 타고 이 곳 마포전차종점에 내려 만세운 동을 이어 나갔다. 이곳에는 ‘3·1 독립운동기념터; 마포전차종점’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1919년의 3·1운동은 3월 1일 을 시작으로 3월 5일의 2차 시위 를 거쳐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 때 마포에 있던 사립 동막흥영학 교(1908년에 개교한 여학교)의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여 공덕 리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 시 위는 조선총독부 순사보로 있던 학부모 정호석(당시 34세)이 흥영 학교 교사 오정화(1899-1974, 옥 인동 거주)·박성철(당시 29세, 마 포동 거주)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마포 일대는 3월 23일에도 동막 리를 비롯하여 마포, 용강, 합정, 서강 일대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 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지역에서 시작된 3·1운동을 기리는 표석이 하나도 없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서울 동작구에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지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현충원 역사탐방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중심으 로 하는 근현대 역사탐방을 이끌고 있고, 「오마이 뉴스」에 ‘동작 민주올레’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현충원 역사산책』,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 『낭 만과 전설의 동작구』, 『동작 민주올레』 등이 있다. 필자 김학규 ➒ ➒  마포 3 · 1운동을 주도한 정호석의 수형자 카드(「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➓  ‘3 · 1독립운동기념터, 마포전차종점’ 표석 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