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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4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운동 당시 왕십리 만세운동에 참 여한 신도들을 기리고자 3·1운 동 100주년에 맞춰 ‘3·1운동 참 여(100주년 기념)’라고 씌어 있는 현판을 교회 입구에 설치하였다. 김상옥, 이필주 등 여러 독립운동 가의 숨결이 남아 있는 꽃재교회 꽃재교회 입구에는 독립운동가 이필주 목사(1869-1942)와 이규 갑 목사(1888-1970)를 기리는 기 념비가 세워져 있고, 교회 7층에 는 꽃재교회의 역사를 담은 역사 자료실도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 필주 목사는 1913년에 왕십리교 회(현 꽃재교회)의 전도사로 파송 되어 활동했고, 1918년부터는 손 정도 목사에 이어 정동교회 담임 목사로 있었다. 정동제일교회는 3·1운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본 거지 중 하나였다. 교회 맞은편의 꽃재어린이공원(하왕십리 569번 지)은 이필주의 본적지 터다. 이필 주의 출생지는 ‘광희문안’으로 기 록되어 있어 하왕십리는 결혼하 면서 본적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꽃재교회의 14대 목사 이규갑은 3·1운동이 한창이던 4월 2일에 인천 만국공원에서 개최된 전국 13도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한 성임시정부 조직에 관여한 인물 이다. 이규갑은 대표자회의 참석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충남도 대표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귀국 한 이후인 1929년에는 신간회 경 동지회 집행위원장도 지냈다. 김상옥 의사(1889-1923)도 이곳 꽃재교회와 인연이 있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 방문에 맞춘 거사를 준비하다 실패한 직 후인 10월 초, 김상옥 의사가 4-5 일간 몰래 머물며 모친과 아내를 비밀리에 만난 곳도 꽃재교회(당 시 왕십리교회) 김태현 목사의 집 (하왕십리 177)이었다. 김태현 목 사는 김상옥 의사와 10여 년 전부 터 동대문교회에서 인연을 맺어 온 인물이었다. 김상옥은 이곳에 서 유득신(1896-1958)을 만나 암 살단에 가입시키고, 독립군자금 마련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한독립단의 국내지단에서 활동한 홍영전 만주(중국 동북지방)에 근거한 대한독립단(도총재 박장호, 총단 장 조맹선)의 국내지단 설치를 위 해 파견된 김기한(1883-?)과 함 께 활동한 목공(木工) 독립운동가 홍영전(1884 - ?)의 집터(하왕십 리 163)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아쉽게도 그의 발자취를 찾 을 길은 없다. 홍영전은 1920년 12월에 검거되어 3년 형을 언도 왕십리교회 입구에 있는 ‘3 · 1운동 참여(100주년 기념)’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