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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4년 5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이 동작구에 살았다. 상도동에 살 았던 권병덕(1867-1944)의 아들 권영창과 그 가족을 제외하면 길 선주(1869-1935)의 장손 길악영 과 그 가족, 김병조(1877-1948) 의 장손 김철, 나용환(1863- 1936)의 장자 나경덕과 그 가족 은 모두 사육신역사공원 맞은편 에 살았다. 1960년대 초 이들의 가난한 삶을 다룬 당시의 언론보 도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 한다!”는 말을 실감나게 보여준 다. 노량진은 해방 이후 가난한 독 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여럿 살 던 곳이었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이 시작 된 곳 광주(廣州)공산당협의회 사건 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1월 9일 노량진 본동리에 있던 불로상회 지점서기 이양재의 연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경기도 광주에 근거하여 활동하던 석혜환, 정영 배 등 14명이 연이어 연행되면서 이들은 혹독한 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신간회 활 동 등을 주도하던 이들은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자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의 활동 무대를 경 성과 인천까지 확대하면서 일제 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투지를 보 여줬다. 노들나루공원의 박양순 생가터, 김홍일장군의 한강선방어전투 1920년 3·1운동1주년기념투 쟁은 서울에서도 서대문형무소에 서 만이 아니라 배재고보, 진명여 학교, 배화여학교 등에서도 벌어 졌다. 노들나루공원이 있는 본동 출신 박양순(朴良順, 1903-1972, 본동리 177)도 배화여학교 뒷산 에서 벌어진 3·1운동1주년기념 투쟁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박양 순은 2018년 광복절을 맞아 김경 화, 성혜자, 소은명, 안옥자, 안희 경 등 5명과 함께 뒤늦게 독립유 공자로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박양순이 수감되어 있던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는 배화여 학교에서 벌어진 3·1혁명 1주년 기념투쟁으로 투옥되었던 박양순 을 비롯한 24명의 수감 당시 사진 이 전시되어 있다. 노들나루공원에 있는 한강방어 선전투기념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 의 기습남침이 있은 지 불과 3일 만에 수도서울이 함락되고, 인민 ➊ ➊  노량진 학원가에 있는 옛 가톨릭노동청년회 건물(가노청이 운영하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 cafe’ 간판이 붙어있다.)  ➋  사육신공원 입구 벽에 새겨진 함석헌의 글(이상 필자 촬영)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