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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의거 기념비 고전면 성천리의 박영묵(대통령표창, 1977/건국훈장 애족장, 1990)은 마을의 이종의, 정상정,정의용등과 더불어 인근 동지 33인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고 서로 사생을 같이 할 것을 맹약하였다. 곧 동지 중 정세기를 하동읍으로 파견하여 독립선언서를 구해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세기는 하동읍으로 가는 도중 경찰에 피검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진교리의 경찰주재소는 빙상경계를 펴게 되었다. 4월 6일 장날 오후 1시 40분경 박영묵은 미리 준비된 단상에 큰 태극기를 잡고 올라가 의거의 취지를 설명후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였다. 이에 매복해 있던 33인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고 저지하려던 일경을 제압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경이 총을 난사하면서 마을로 들이닥쳤고 박영묵은 자신들 4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포승을 당하였다. 최알밤[본명 미상]은 이떄 난사된 총알에 피살됐고, ㅈ어세기는 진주경찰서에서 2개월간 구류를 당하였다. 모든 책임을 지고 검거된 박영묵, 장상정,이종의, 정의용은 2년 6개월의 형을 언도받아 서울형무소에서 투옥되었다. 3.1독립의거기념비는 이러한 고장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1982년 3월 1일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