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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은 경기도 시흥(始興)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수암면(秀岩面) 수암리(秀岩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수암면 면내 18개 동리(洞里) 주민이 3월 30일 오전 10시에 비립동(碑立洞)에 모두 모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작정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날 모이기로 한 비립동에는 2,0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모여들었는데, 윤동욱은 마을 주민을 이끌고 여기에 참가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유익수(柳益秀)·윤병소(尹秉昭) 등이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그 뒤를 시위군중은 만세를 고창하며 따랐다. 이들은 주재소·보통학교·향교 등을 돌여 행진을 벌였다. 윤동욱은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며 보통학교 앞을 지날 때, 순사 임건호(任健鎬)를 만나 만세시위에 가담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그는 불응하였다.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이해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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